AI에 투자하고 사람을 줄이는 기업들, 나는 그다음이 걱정된다
AI 투자와 인력 감축이 함께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일자리가 줄어든 뒤의 소득과 권력을 생각한다. 덴마와 듄, 스텔라리스의 귀족사회와 거대 기업이 더는 먼 상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
AI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기업들이 한편으로는 직원을 줄이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사업을 확장하려면 사람도 더 필요할 것 같은데, 투자 소식과 해고 소식이 함께 나온다. 회사의 미래를 밝게 전망하는 발표를 읽다가, 그 미래에 지금 일하는 직원은 얼마나 포함돼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두 결정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사람에게 계속 지급하던 비용을 줄이고, 더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기술과 설비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 계산이 실제로 얼마나 잘 맞는지는 별개지만, 기업이 기대하는 바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식을 해고에 대한 분노나 냉소만으로 넘기기 어렵다. 돈이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다 보면, 일자리 몇 개가 사라지는 문제보다 더 큰 질문에 도달한다. 생산에 필요한 사람이 계속 줄어든다면, 그 사회에서 돈과 권력은 누구에게 남게 될까.

직원들이 떠난 뒤에도 생산과 연산이 이어지는 회사를 상상한 AI 생성 일러스트.
경영진이 꿈꾸는, 쉬지 않는 회사
사람은 밥을 먹고 쉬어야 한다. 출퇴근하고, 잠을 자고,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연봉을 협상하고 복지를 요구하며, 필요하면 노조를 만들어 회사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생활이지만, 비용과 생산량을 관리하는 경영진에게는 계속 고려해야 할 조건이다.
그 조건들을 상당 부분 없앨 수 있다면 어떨까. 직원의 식사와 수면, 휴가와 임금 협상을 기다릴 필요 없이,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교대로 24시간 일을 처리하는 회사. 내가 떠올리는 ‘강철의 무한루프’는 그런 모습이다. 생산은 계속되고, 사람과 협상해야 하는 일은 최소한으로 남는다. 경영진과 이사회에는 얼마나 매력적인 구상일까.
물론 지금의 AI와 로봇이 무제한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전력과 반도체가 필요하고, 고장과 오류가 생기며, 사람이 유지·보수하고 결과를 판단해야 한다. 자동화 비용이 사람을 고용하는 비용보다 커지는 일도 있다. 다만 기업이 사람에게 맡기던 업무를 기계로 바꿨을 때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전환을 계속 시도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노동자가 회사와 협상할 수 있는 근거다. 회사가 사람의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임금과 근로조건을 놓고 협상하는데, 그 필요 자체가 줄어들면 노동자의 요구는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회사가 잘돼도 내 자리가 남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 변화는 AI 모델을 개발하는 회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델을 서비스에 넣는 회사, 기업용 솔루션을 공급하는 회사, 클라우드와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에서도 인력을 줄이거나 재배치하는 결정이 이어진다.
AWS를 운영하는 아마존의 앤디 재시는 이미 2025년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수행되는 일부 업무에는 더 적은 인력이 필요하고, 다른 종류의 업무에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앤디 재시가 2025년 6월 직원들에게 보낸 생성형 AI 관련 메시지의 한 문장을 번역했다. 그는 같은 글에서 AI 활용에 따른 효율 개선으로 향후 몇 년 동안 전체 사무직 인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이후 조직 개편 안내에서 일부 분야의 채용을 계속하면서도 약 1만 4천 개의 사무직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도 2025년 7월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회사가 성장하고 설비투자가 늘어나는 동시에 해고가 진행되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전체 인원은 비교적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회사 전체의 규모가 유지되더라도, 어떤 직원은 떠나고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높은 보수를 받으며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2026년 4월에는 메타의 약 8천 명 감원 계획이 보도됐다. 오라클은 2026년 8월 말 기준 분기보고서에서 일부 업무에 AI를 도입하는 것을 구조조정의 효율 개선 방안에 포함했고, 8월 말 이후 관련 계획에 약 7억 달러를 추가했다고 밝혔다.
각 회사의 해고를 전부 AI가 사람을 직접 대체한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조직 개편과 사업의 우선순위 변경, 투자 재원 확보가 함께 작용한다. 그래도 이 발표들을 읽으면 ‘회사가 잘되면 직원의 자리도 안전해진다’는 기대를 하기 어려워진다. 기업은 성장하면서도 지금의 직원을 덜 필요로 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일부를 다시 고용해도 전체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대량 해고 뒤에 일부 인력이 다시 필요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다시 사람을 찾는다는 사실만으로 자동화가 실패했다거나, 해고 전의 고용 규모로 돌아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회사에는 필요한 업무를 유지하면서 전체 비용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실제 기업의 수치가 아닌 단순한 가정을 해 보겠다. 직원 100명에게 쓰던 연간 인건비를 100이라고 놓자. 이들을 내보낸 뒤 10명을 다시 고용하고, 그 10명에게 지급하는 총인건비를 30으로 정한다면 어떨까.
다시 고용된 사람은 이전 직원들의 평균보다 세 배의 보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회사의 전체 인건비는 70% 줄어든다. 소수에게 높은 보수를 주는 일과 다수의 일자리를 없애는 일은 동시에 성립한다.
물론 실제 수익성은 퇴직 비용과 AI 이용료, 설비투자, 유지·보수비, 품질 저하에 따른 손실까지 계산해야 알 수 있다. 인건비가 70% 줄었다고 이익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가정은 왜 소수의 고액 연봉 채용 소식이 나와도 다수의 고용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지 보여 준다.
회사 입장에서 필요한 사람 열 명을 높은 보수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돌아오지 못한 아흔 명의 생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줄어든 인건비와 늘어난 투자는 어디로 가는가
해고 소식에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나는 그 감정과 함께 기업이 다음에 무엇을 사들이는지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데 돈을 쓰는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늘리는 데 쓰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고용 구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라클의 같은 분기보고서에는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분기 설비투자 현금 지출이 전년 동기 85억 달러에서 285억 달러로 늘었다는 내용도 있다. 감원을 추진하는 회사가 투자를 멈춘 것이 아니다. 인력 구조를 바꾸는 동안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데는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테슬라의 기가팩토리와 테슬라·스페이스X·xAI가 추진하는 테라팹(Terafab)도 이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테라팹 프로젝트 소개는 로직 반도체와 메모리, 첨단 패키징을 한곳에서 다루고, 지상과 우주에서 사용할 AI 칩을 대규모로 생산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한다.

머스크의 사진과 테라팹 계획 조감도를 조합해 그림으로 변환한 AI 일러스트. 인물 사진: Justin R. Pacheco / 미공군, 퍼블릭 도메인. 시설 참고: Terafab 프로젝트 소개.
현재 기가팩토리가 사람이 없는 공장이라는 뜻은 아니다. 테슬라의 제조 소개에도 로봇과 함께 일하는 생산직 직원과 엔지니어가 등장한다. 테라팹 역시 그 구상만으로 완전 무인 생산이 실현됐다고 볼 수는 없다. 내가 여기서 읽는 것은 기계와 소프트웨어를 더 많이 활용하고, 생산을 확대할 때 필요한 사람의 수는 가능한 한 적게 늘리려는 방향이다.
그 방향이 계속된다면 회사가 커지는 속도와 일자리가 늘어나는 속도는 점점 달라질 수 있다. 제품과 서비스는 더 많이 생산되지만, 그 대가가 임금으로 지급되는 비중은 줄어들 수 있다. 생산 설비와 소프트웨어를 소유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커질 때,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무엇으로 생활하게 될까.
기본소득을 받는 삶에는 얼마나 많은 선택권이 남을까
그때 인류가 추구할 삶은 무엇일까. 일을 덜 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거나, 철학과 예술에 시간을 쓰는 미래일 수도 있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게임을 하고, 책을 읽고, 무언가를 만드는 삶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모든 사람이 평생 회사에 고용돼 있어야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불안하게 느끼는 경우는 기본소득과 게임에서 얻는 소액의 캐시를 합쳐 기초적인 생활만 겨우 유지하는 미래다. 먹고살 수는 있지만 집을 옮기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여유는 없고, 생산 수단을 소유하거나 사회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가능성도 낮아진다면 어떨까. 오락을 선택할 자유만으로 내 삶을 결정할 권한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의 액수와 재원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어떤 권리로 받는지도 중요할 것 같다. 시민들이 함께 정한 제도로 소득을 보장받는 사회와, 거대한 기업이나 소수의 자산가가 정한 조건에 따라 생활비를 받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다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양영순 작가의 《덴마》가 떠오른다. 우주 귀족들이 행성을 소유하고, 그곳의 사람들을 가문의 필요에 따라 함부로 대하는 세계. 사람의 목숨과 삶이 귀족의 이해관계보다 가볍게 취급되는 모습을 스페이스 판타지의 설정으로 읽을 때와 지금 떠올릴 때의 느낌이 다르다.

《덴마》의 홍보 이미지 속 주인공을 참고해 그린 AI 일러스트. 행성과 도시 배경은 새로 구성했다. 원작: 양영순 / 네이버웹툰.
행성을 소유한 귀족이라는 표현은 아직 허황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주거와 에너지, 통신과 생산시설을 극소수가 통제하는 상황으로 풀어 보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가 걱정하는 테크노 귀족사회는 그런 사회다. 기술을 가진 소수가 다수의 생활 조건까지 결정하는 미래.
듄의 귀족사회가 그저 황당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
《듄》에는 우주의 황제가 있고, 행성을 다스리는 공작과 귀족 가문이 있다. 아라키스의 스파이스는 인간의 능력과 우주 문명의 운영에 깊이 관련돼 있으며, 권력 다툼은 지하드라는 거대한 성전으로 이어진다. 하나씩 떼어 놓으면 현대 사회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듄》(2021)의 아트레이데스 가문 스틸을 그림으로 변환한 AI 일러스트. 참고 이미지: Vanity Fair 게재 스틸.
물론 《듄》의 본편은 생각하는 기계가 금지된 세계다. AG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회를 그대로 그린 작품은 아니다. 내가 지금의 AI 산업과 겹쳐 보는 부분은 문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기술을 소수가 통제하고, 그 통제력이 지배할 권한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AGI가 다양한 지적 업무를 처리하고 로봇이 물리적 생산을 상당 부분 맡게 되는 미래를 가정해 보자. 그 시스템을 소유한 집단이 에너지와 운송수단까지 확보한다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고용해야 하는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적어질 수 있다. 거기에 우주 거주지와 자원 개발 시설까지 같은 집단의 소유가 된다면, 주민이 그 소유자에게 얼마나 의존하게 될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볼수록 그런 지배질서가 등장하는 것도 결국 시간문제인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낀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는데, 그 기술로 생긴 권한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따라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AGI의 등장 시점과 능력, 우주 개척의 속도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귀족사회가 된다는 결말도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기술이 발전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자유와 협상력이 함께 커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유와 분배, 정치적 권한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같은 기술로도 전혀 다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국가만큼 커진 회사 안에서 우리는 누구일까
이 상상을 우주로 옮기면 문제는 더 직접적이 된다. 어떤 회사가 개척지의 산소와 전력, 주거시설과 통신망,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수단을 모두 공급한다고 해 보자. 그곳의 주민에게 그 회사는 상품 몇 개를 파는 사업자 이상의 존재가 될 것이다.

한 기업이 주거와 생명유지 시설, 운송수단을 공급하는 우주 도시를 상상한 AI 생성 일러스트.
지구에서도 직장을 잃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회사 밖으로 나가는 데 우주선이 필요한 곳에서는 떠날 자유가 얼마나 실질적일까. 주민은 시민으로서 규칙을 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을까. 회사의 결정을 거부해도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스텔라리스의 메가코프처럼 국가 규모로 성장한 기업들이 각자의 영역과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생산과 생존에 필요한 시설을 소유한 집단들이 서로를 견제하다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가까운 상황으로 가게 될 수도 있을까. 나는 그 결과가 궁금하면서도 두렵다.
그래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사회에 대한 논의를 미루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동화로 늘어난 소득을 어떤 제도로 나눌 것인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안정적인 생활과 정치적 권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거대 기업의 결정에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 우주를 개척한다면 그곳의 주민이 어떤 권리를 갖는지도 함께 정해야 할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을 얼마로 정하면 되는지, 기업의 규모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간단히 말할 수도 없다. 다만 AI가 생긴 뒤에도 모든 사람이 계속 재교육을 받아 다음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는 충분한 대비가 되기 어렵다고 느낀다.
나는 쉬지 않고 생산하는 회사가 등장했을 때, 그 회사의 소유자가 아닌 사람도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AI 투자와 인력 감축 소식을 보며 결국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다. 사람이 덜 일해도 되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