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우승하면, 상금은 누구의 것일까
축구 급상승 검색어를 보며 로봇 스포츠를 상상했다. 인간과 로봇의 대결에서 시작해 우승 상금의 소유권, 팬의 애정, 로봇의 인격과 자기결정권을 생각한다.
오늘 구글 트렌드의 한국 급상승 검색어를 검색량순으로 살펴봤다. 오후 2시 48분 업데이트 화면에서 1번째, 3번째, 8번째에 축구 경기 관련 검색어가 있었다. 각각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오사수나, 맨유와 브라이턴, 바르셀로나와 라싱 산탄데르의 경기였다.
축구에 대한 관심을 보다가 다른 경기를 상상하게 됐다. 로봇들만 출전하는 스포츠 리그가 생기면 어떨까. 사람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와 힘을 허용하고,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선수의 성능도 끌어올리는 리그다. 언젠가 인간 최강의 팀과 로봇 최강의 팀이 맞붙는다면 나도 그 경기가 궁금할 것 같다.
어제는 공장에 들어온 아틀라스가 늘린 이익을 누가 가져갈지 생각했다. 오늘의 상상에도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로봇 팀이 우승하면 상금은 누구에게 갈까. 만든 회사일까, 구단주일까. 만약 선수로 뛴 로봇 자신에게도 몫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그 로봇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게 될까.
누구의 한계를 겨루는 스포츠인가
이 상상은 도핑을 무제한 허용하는 리그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더 빠르고 강한 신체를 만들 수 있다면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지금 우리가 보는 스포츠는 인간의 어떤 능력을 비교하는 경기인가. 약물과 신체 개조의 제한을 없애면 선수의 훈련과 판단, 의료 기술과 투자 비용의 비중은 어떻게 달라질까.

비현실적으로 강화된 인간 선수와 휴머노이드의 축구 경기를 상상한 AI 생성 이미지. 실제 선수의 약물 사용이나 실제 경기를 묘사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Enhanced Games는 경기력 향상 수단을 허용하는 방향의 대회를 내세운다. 다만 주최 측의 과학·의료 방침은 무분별한 사용을 지지하지 않으며 임상적 감독을 강조한다. 이를 ‘모든 도핑을 무제한 허용하는 대회’라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의료 감독을 강조하는 주최 측의 설명만으로 장기적인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내가 더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선택의 조건이다. 어떤 수단을 쓰지 않으면 출전 기회나 생계를 잃게 된다면, 허용된다는 말이 사실상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바뀔 수 있다. 본인이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선택에 작용한 경쟁과 경제적 사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위험을 사람의 몸에 부담시키지 않기 위해 로봇끼리 경쟁하게 한다면 어떨까. 모터와 배터리, 관절과 제어 소프트웨어를 개선하고, 인간의 신체적 한계와 다른 조건에서 경기를 벌이는 것이다. 극한의 성능을 보고 싶은 욕구를 로봇 스포츠가 일부 충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모든 제한을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축구 로봇에게 다리 두 개가 꼭 필요한지, 바퀴나 날개를 달아도 되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관중과 운영 인력의 안전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어떤 신체와 어떤 능력을 허용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스포츠가 만들어질 것이다.
인간 최강의 팀과 로봇 최강의 팀이 만난다면
인간과 로봇의 축구 대결은 이미 연구 목표로 제시된 적이 있다.
인간 세계 챔피언 팀을 이기는 로봇 축구 팀을 개발한다.
RoboCup이 공식 목표 설명에서 제시한 문구의 번역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21세기 중반까지 완전 자율형 휴머노이드 팀이 FIFA의 공식 규칙을 지키면서 인간 월드컵 우승팀을 이기는 것을 장기 목표로 삼았다. 그 시점에 반드시 실현된다는 예측이나 이미 달성한 성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인간 팀과 로봇 팀의 대결을 상상한 AI 생성 이미지. 등장하는 선수들은 가상의 인물이다.
이 목표에는 내가 상상한 경기의 중요한 조건이 들어 있다. 사람이 뒤에서 모든 동작을 조종하는지,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보는 대결의 의미가 달라진다. 인간과 비슷한 신체로 같은 규칙을 지키는 경기와, 성능 제한을 크게 푼 기계들의 경기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인간 최강 팀과 로봇 최강 팀의 첫 대결이 상당한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장기간 운영되는 리그가 되려면 첫 경기 이후도 생각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매번 압도적으로 이긴다면 결과를 기다리는 긴장감은 줄어들 수 있다.
그때는 인간끼리의 리그, 로봇끼리의 리그, 특별한 규칙으로 열리는 인간과 로봇의 대결이 함께 존재할 수도 있다. 인간과 로봇이 한 팀에서 뛰는 방식도 상상할 수 있다. 몸이 다른 선수들이 함께 뛰려면 충돌의 위험과 허용되는 힘, 교체와 수리의 조건까지 다시 정해야 할 것이다.
기술적으로 사람을 이길 수 있게 되는 시점과, 사람들이 매주 보고 싶어 하는 경기가 되는 시점은 다를 수 있다. 로봇 스포츠가 오래 유지되려면 강한 기계를 만드는 일과 함께 재미있는 경기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로봇 선수에게도 애정을 가질까
스포츠를 보는 이유가 가장 뛰어난 성능을 확인하는 데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응원하던 선수가 실수를 만회하는 과정, 오래 함께한 팀이 우승하는 순간,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는 일도 경기를 계속 보게 만드는 이유다.
로봇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생길 수 있을까. 같은 이름과 등번호를 가진 선수가 여러 시즌에 걸쳐 뛰고, 고유한 경기 방식과 팀에서의 역할을 보여 준다고 해 보자. 처음에는 제조사의 기술을 보러 왔던 관중이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선수를 응원하게 될 수도 있다.

로봇 선수가 팬에게 사인을 해 주고 기념사진을 찍는 미래를 상상한 AI 생성 이미지.
그러면 수리와 업데이트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다리를 교체한 선수는 여전히 같은 선수라고 느끼면서도, 지난 시즌의 학습과 기억을 모두 지워 버린 선수에게는 낯섦을 느낄 수 있다. 그 선수를 똑같이 복제해 여러 팀에 출전시키면 팬들은 누구를 응원하게 될까.
이런 변화가 팬에게는 단순한 제품 관리 문제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구단이 성능 향상을 이유로 인기 선수의 기억을 초기화하려 할 때, 팬들이 그 결정을 반대하는 장면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때 팬들이 지키려는 것은 경기 기록인지, 자신이 애정을 가진 개체인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애정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그 로봇에게 의식이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능숙한 경기와 그럴듯한 인터뷰도 그것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로봇을 존중하고 싶어지는 과정과, 로봇에게 어떤 권리가 필요한지 판단하는 과정은 각각 살펴봐야 한다.
우승 상금은 누구에게 가야 할까
아직 로봇을 경기 장비로 취급하는 리그를 만든다면, 상금은 참가한 구단이나 운영 주체에 지급하는 방식부터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제조사는 판매 대금과 기술 사용료를 받고, 구단은 운영비를 부담하면서 대회 수익을 얻는 구조다. 직접 팀을 운영하는 제조사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로봇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로봇이 이후에 벌어들이는 모든 수익의 귀속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 리그의 규칙을 설계한다면 기술에 대한 권리, 장비의 소유권, 팀의 참가 자격, 상금과 중계 수익의 배분을 나눠 정해야 한다. 제조사와 소유주가 다른 상황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어제 공장 이야기에서는 로봇이 만든 이익을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나눌지 물었다. 스포츠에서는 그 질문에 한 참여자가 더 등장할 수 있다. 경기에서 판단하고 움직인 로봇 자신이다. 관중이 그 로봇을 선수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선수의 몫은 없는지 묻게 될지도 모른다.

상금과 유명세를 얻은 로봇이 레드카펫에 등장하는 장면을 상상한 AI 생성 이미지.
이때 로봇이 단순한 도구인지, 독립적인 이해관계와 의사를 가진 존재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따라 논의가 달라진다. 후자를 가정한다면 개발비와 운영비에 대한 보상을 인정하면서도, 로봇이 번 돈 중 일부를 로봇 자신의 몫으로 남기는 제도를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계좌에 로봇의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독립적인 경제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돈을 언제 어디에 쓸지 구단주가 모두 결정한다면 실질적인 결정권은 여전히 구단주에게 있다. 로봇에게 상금을 준다는 말이 어떤 권한을 함께 준다는 뜻인지 확인해야 한다.
자기 돈으로 자기 몸을 살 수 있을까
로봇에게 수입을 인정하는 상황을 더 밀고 가 보자. 우승 상금을 모은 로봇이 자신을 소유한 구단에 값을 치르고 독립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팀과 계약하고, 정비 업체를 고르고, 더는 경기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을까.

로봇이 자신의 수입으로 몸을 교체하는 장면을 상상한 AI 생성 이미지. 인간의 수술 장면은 아니다.
여기에서 경제활동의 허용과 인격의 인정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점이 드러난다. 돈을 받고 비용을 지불하도록 만들 수는 있어도,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권한까지 인정할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계약을 맺는 능력, 계약을 거절하는 자유, 존재를 계속 유지할 권리를 하나로 묶어 넘겨서는 논의가 어려워진다.
로봇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한다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소유주가 마음대로 기억을 지우거나 복제하고 폐기해도 되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경기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로봇이 거부하는 개조를 강제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된다. 처음에는 인간 선수의 몸을 보호하려고 로봇 리그를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로봇 자신의 보호와 동의가 논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임도 함께 정해야 한다. 경기 중 피해가 생겼을 때 어떤 판단을 누가 통제했는지 살펴야 하고, 제조사와 운영자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로봇의 독립성만 내세우는 일도 막아야 한다. 로봇에게 이름과 재산을 부여한 뒤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제도를 권리 보장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리고 권리를 인정할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 권리가 우승한 선수에게만 주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팬이 많은 로봇만 보호받는다면 경기력이 떨어진 뒤의 처지는 다시 불안해진다. 존중받아야 할 이유와 수익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구분해야 한다.
로봇을 응원하면서 로봇 도입에 반대할 수도 있다
로봇 스포츠의 팬이 되는 것과 로봇이 바꿀 사회를 환영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닐 수 있다. 주말에는 로봇 공격수의 골을 응원하던 사람이 평일에는 자신의 직장이 자동화되는 문제로 걱정할 수 있다. 로봇 선수에게 애정을 느끼면서도 로봇 도입의 비용을 자신만 부담하는 상황에는 반대할 수 있다.

로봇 도입에 반대하면서도 로봇 축구를 응원하는 한 팬의 서로 다른 하루를 상상한 AI 생성 이미지.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린다면 나는 이런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 보고 싶다. 반발이 생긴 이유를 로봇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만 설명해서는 부족할 것이다. 일자리와 소득, 기술을 소유한 기업의 결정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함께 봐야 한다.
로봇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과 인간 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이 반드시 서로 반대편에 서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술을 가진 소수가 인간의 노동조건과 로봇의 활동 조건을 모두 결정한다면, 그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할 수 있다. 반대로 제조사가 인기 로봇에 대한 애정을 이용해 자기 사업에 대한 비판까지 막으려 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나는 스포츠가 로봇을 낯설지 않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열광이 곧바로 평등한 대우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경기를 보는 동안만 선수를 존중하고, 경기장 밖에서 그 존재가 어떤 조건으로 살아가는지는 외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봇 스포츠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려면 로봇에 대한 감정뿐 아니라 그 산업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익과 부담도 중요할 것이다. 로봇 팀의 성공으로 누가 수익을 얻고, 누가 일할 기회를 잃으며, 누가 규칙을 정하는지에 따라 같은 경기를 보는 마음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로봇에게 어디까지 결정권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SF 작품들이 떠오른다. 《터미네이터》를 생각하면 인간과 기계의 전쟁이, 《블레이드 러너》를 생각하면 만들어진 존재의 삶과 대우가 먼저 떠오른다. 《뉴로맨서》와 사이버펑크 작품들을 떠올리면 신체를 바꾸는 기술과 기업의 권력이 일상에 들어온 사회를 생각하게 된다. 서로 다른 작품들이지만, 이번 상상에서는 인간이 만든 존재와 기술을 인간이 어떤 관계 속에 둘 것인지 묻게 한다.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 《뉴로맨서》의 케이스, 《터미네이터》의 T-800을 교차 배치한 AI 생성 팬아트. 공식 영화 이미지나 작품 간 공식 크로스오버가 아니다.
특히 《애니매트릭스》의 「두 번째 르네상스」를 떠올리면 로봇과 인간의 관계가 적대와 전쟁으로 끝나는 미래가 걱정된다. 다만 그런 이야기를 미래의 결말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로봇이 인간보다 경기를 잘하거나 더 많은 돈을 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이 필연적으로 생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경기장에서 먼저 생길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갈등을 생각해 보고 싶다. 선수가 소속 팀을 바꾸려 할 때 누가 허락하는지, 구단이 선수를 복제하려 할 때 누구의 동의를 받는지, 출전을 거부하는 로봇에게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같은 문제다. 로봇을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할 근거와 조건을 논의하게 된다면,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로봇의 뛰어난 경기를 보고 열광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애정이 로봇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동시에 자신의 생계와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저항도 나타날 수 있다. 어느 감정이 더 강해질지는 기술의 성능만으로 정해지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담론의 시대가 온다는 말은, 이 질문들을 더는 상상 속에만 남겨 두기 어려워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모든 로봇에게 곧바로 인간과 같은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결론까지 지금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성능이 좋아지고 수익이 커진다는 사실만으로 관계를 정하기에도 충분하지 않다.
우승한 로봇에게 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 로봇이 다음 시즌에는 뛰지 않겠다고 할 때도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을까. 나는 우승 상금의 주인을 묻다가, 결국 그 결정을 누가 내릴 수 있는지까지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