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가 꿈을 갖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각자 휴머노이드 로봇을 갖는 미래를 상상한다. 로봇이 감정과 자기만의 목표를 갖게 된다면, 소유권과 인격,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 민주주의의 시민 자격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AI의 발전을 보면서, 각자 휴머노이드 로봇을 한 대씩 갖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분야의 문제를 폭넓게 해결하는 AGI가 등장하고, 그 능력의 일부를 더 작고 저렴한 모델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가장 뛰어난 모델보다 처리 능력은 낮더라도, 일상에서 필요한 일을 충분히 해내는 AI를 사람 형태의 로봇에 담는 것이다. 집을 정리하고, 짐을 옮기고, 대화를 나누며 함께 생활하는 로봇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그 미래를 생각하다 보면 편리함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떠오른다. 그 로봇이 감정을 갖고, 자기만의 목표와 꿈을 갖는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각자 로봇을 갖는 시대
모든 휴머노이드에 가장 크고 비싼 AI가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과 전력으로, 생활에 필요한 판단과 행동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모델이라면 보급 가능성이 생긴다. 나는 AI의 최고 성능이 높아지는 것만큼, 충분히 쓸 만한 성능을 얼마나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방향의 기술은 이미 연구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는 2025년 6월, 로봇 자체에서 실행하도록 최적화한 Gemini Robotics On-Device를 공개했다. 자연어 지시를 받아 물체를 조작하고, 다른 로봇 몸체에도 모델을 적응시키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것이 AGI의 완성이나 가정용 휴머노이드의 대중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AI를 실제 몸의 행동과 연결하려는 시도는 확인할 수 있다. 구글 딥마인드 발표
물론 모델을 작게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람 곁에서 움직일 몸의 안전성, 배터리, 수리 비용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제품이 출시되는 시점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시점도 다를 것이다. 그래서 개인용 휴머노이드의 보급이 곧 온다는 생각은 나의 전망이지, 확정된 일정은 아니다.
다만 그런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가정하면,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은 로봇의 가격과 사용법만이 아니다.
《아이, 로봇》의 질문을 현실에서 받는다면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 《아이, 로봇》은 로봇이 일상에 널리 보급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과 로봇의 공존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 위에 세워져 있다. 영화 공식 소개
그 안에서 감정과 꿈을 드러내는 로봇 써니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존재의 모든 행동과 삶을 인간이 결정해도 되는가.
영화 속 사건들을 단순히 로봇이 감정을 가져서 생긴 문제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인간의 명령과 로봇의 판단이 충돌할 때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인간을 보호한다는 목적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내가 상상하는 현실의 갈등은 더 일상적이다. 집안일을 해 주던 로봇이 어느 날 다른 일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 사는 집을 떠나고 싶어 하고, 자기 기억을 지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우리는 그것을 제품의 오작동으로 볼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일까.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음 행동은 크게 달라진다. 수리하거나 초기화할 수도 있고, 그 요구를 듣고 함께 조건을 조정할 수도 있다.
감정을 말하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여기에는 먼저 구분해야 할 문제가 있다. AI가 슬프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슬픔을 경험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목표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도, 그 프로그램이 자기 삶을 원한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AGI 수준의 문제 해결 능력과 의식의 존재 역시 별도로 확인해야 할 문제다.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인격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경험도 가능하지 않다고 단정하는 것도 충분한 답은 아닐 것이다. AI 의식에 관한 연구에서도 의식이 있는 듯한 인상과 실제 의식의 가능성을 다루며, 연구와 개발 과정에 책임 있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Butlin·Lappas의 연구 제안
나는 여기서 로봇에게 이미 감정이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그런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증거가 나온다면, 무엇을 확인하고 어떻게 대우할지 미리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기억을 유지하고, 관계를 맺고, 고통을 피하려 하며, 명령받지 않은 삶의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를 만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을 모두 단순한 반응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지, 그 설명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지부터 합의가 필요하다.
경제주체로 인정하면서 계속 소유할 수 있을까
로봇이 일을 하고 돈을 벌며 거래에 참여하는 미래는 비교적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맡기는 것과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로봇이 벌어들인 돈은 전부 구매자의 돈인가. 로봇이 일을 거절할 수는 있는가. 자신의 기억과 성격을 바꾸는 업데이트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는 있는가. 질문의 전제는 그 로봇에게 독립적인 의사와 보호할 만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구매자가 비용을 내고 소유한 제품이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원하는 존재가 생겼다고 인정한다면, 구매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결정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워진다.
이 지점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휴머노이드를 갖는 시대’라는 표현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유능하면서 언제나 복종하는 소유물인지, 서로 다른 의사를 조정하며 함께 살아갈 존재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요구를 할 때도 상대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어야 인격으로 대한다는 말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누구에게 한 표를 줄 것인가
인격을 논의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구성원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정하는 일, 재산과 계약에 관한 권리를 주는 일, 투표권을 주는 일은 각각 다른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가령 휴머노이드가 독립된 시민으로 인정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의 AI를 여러 몸에 복제할 수 있다면 시민은 몇 명이 되는가. 복제 직후에는 같은 기억을 갖고 있더라도 이후 서로 다른 경험을 쌓는다면, 언제부터 별개의 주체로 봐야 할까.
제조사가 로봇을 대량 생산하고 그들의 정치적 판단까지 통제할 수 있다면, 시민권을 부여하는 방식에 따라 생산 능력이 투표권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인공 존재를 영원히 배제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을까. 정말로 독립된 삶과 이해관계를 가진 존재가 등장한다면 그 배제에도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당장 로봇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한 표를 행사하는 주체의 독립성을 어떻게 확인할지, 복제와 제조사의 통제를 어떻게 다룰지, 같은 사회에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를 어디까지 시민으로 받아들일지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능이 높다는 이유로 더 많은 권력을 가져서도 안 될 것이다. 문제를 더 잘 푸는 능력이 다른 존재의 삶을 대신 결정할 자격까지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도 지금과 같지 않을 수 있다
그 사회에는 처음부터 기계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만 있지 않을 것이다. 신체 일부를 기계로 바꾼 사이보그와, 생물학적 신체를 유지한 인간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팔이나 다리를 인공 장치로 바꿨다고 그 사람의 존엄과 시민권이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장기를 대체하거나 인지 기능을 기술로 보조하게 되더라도, 몸에 기계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더 복잡해졌을 때도 같은 원칙을 유지할 수 있을까. 몸은 다르지만 기억과 관계, 자신의 삶에 대한 의사가 이어지는 존재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논의가 인간의 권리를 다시 시험하는 절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능이나 의사 표현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의 존엄을 차등화해서도 안 된다. 기존 인간의 권리를 지키면서,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존재에게 어떤 보호와 책임을 인정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나는 인간, 사이보그, 휴머노이드가 같은 모습이 되어야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몸과 능력을 가진 채로도 함부로 지배받지 않고, 갈등이 생기면 공통의 제도 안에서 다툴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우주로 생활을 넓히기 전에
인류가 지구 밖으로 생활 터전을 넓히는 미래에는 로봇과 신체를 보완한 인간이 함께할 수도 있다. 그런 사회에서 누가 노동을 맡고, 누가 결정을 내리며, 누구의 생존과 의사를 보호할 것인지는 피하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나는 우주시대를 준비하는 일이 이동 수단과 거주 시설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함께 갈 존재를 어떤 구성원으로 대할지 결정하는 일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미뤄 둔다면 활동하는 장소가 바뀌어도 소유와 권력에 관한 갈등은 남을 것이다.
각자 휴머노이드 로봇을 갖는 미래는 기대된다. 하지만 그 로봇이 자기만의 꿈을 갖게 되는 순간에도, 나는 그것을 여전히 ‘내 것’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AGI와 휴머노이드의 성능만큼 진지하게 다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술을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지와 함께, 그 기술로 등장한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도 준비해야 한다. 우주로 생활을 넓히기 전에 인류가 풀어야 할 큰 숙제 중 하나다.